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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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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별 주제 학습 자료

#장수왕(394-491)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조와 교류하였고,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는 등 적극적인 남하정책을 펼쳐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 394광개토 대왕의 맏아들로 태어남
  • 413왕위에 오름
    #장면1 동진에 사절을 파견해 70년 만에 남조와 교섭을 재개함
  • 414광개토 대왕릉비를 건립함
  • 417신라의 왕위 계승 분쟁에 개입해 눌지 마립간을 옹립함
  • 427#장면2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수도를 천도함
  • 435북위에 사절을 파견해 외교 관계를 수립함
  • 436북위 군대에 쫓겨 온 북연 왕 풍홍의 망명을 수용함
    북위가 풍홍의 소환을 요청했으나 거절함
  • 44020년간 북위와의 사절 교환이 중단됨
  • 466북위의 혼인 요청을 거절함
  • 468신라의 실직주성을 공격해 빼앗음
  • 472북위와의 관계를 강화함
  • 475#장면3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살해함
  • 481(?)#장면4 충주 고구려비를 건립함
  • 49198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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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3#결정적 장면1
    남북조와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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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결정적 장면2
    수도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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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5#결정적 장면3
    백제 한성 함락과 개로왕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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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1(?)#결정적 장면4
    충주 고구려비 건립

#성왕(?-554)

국호를 변경하고 수도를 천도하였으며 통치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한때 한강 하류 유역을 회복하였으나 곧 신라에게 빼앗겼다.
  • ?무령왕의 아들로 태어남
  • 523왕위에 오름
  • 529고구려의 공격으로 혈성이 함락됨
  • 531백제군이 가야의 안라 걸탁성(현재의 함안 근처로 추정)에 진주함
  • 538#장면1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함
  • 540#장면2 22부사의 중앙 관부와 5방의 지방 통치 조직을 정비함
  • 550고구려 도살성을 점령함
    고구려가 금현성을 공격함
    신라가 도살성과 금현성을 모두 빼앗음
  • 551#장면3 한강 하류의 6군을 회복함
  • 552일본에 석가불 금동상 1구, 번개(幡蓋) 약간, 경론(經論) 약간 등을 보냄
  • 5537월, 신라에 한강 하류 유역을 빼앗김
    10월, 딸을 신라 진흥왕에게 소비로 시집을 보냄
  • 554#장면4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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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8#결정적 장면1
    사비 천도와 국호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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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0#결정적 장면2
    중앙 관제와 지방 통치 조직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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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1#결정적 장면3
    한강 하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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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4#결정적 장면4
    관산성 전투에서의 전사

#진흥왕(534-576)

국가 체제를 정비하며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정복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였다. 황룡사를 지어 불교 진흥에도 힘썼다.
  • 534입종 갈문왕의 아들로 태어남
  • 540왕위에 오름
  • 545《국사》를 편찬함
  • 550백제와 고구려가 공방전을 벌이던 도살성과 금현성을 빼앗음
  • 551친정을 시작하며 연호를 개국으로 변경함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 10개 군을 빼앗음
  • 553#장면1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백제를 기습해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함
    신주를 설치하고 아찬 김무력을 초대 군주로 임명함
  • 554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임
  • 555비사벌(현재의 경상남도 창녕)에 완산주를 설치함
  • 556비열홀주(현재의 함경남도 안변)를 설치함
  • 562#장면2 대가야를 완전히 복속시킴
  • 565완산주를 폐지하고 대야주를 설치함
  • 566#장면3 황룡사를 완공함
  • 574신라 최대의 불상인 장륙상을 만듦
  • 576#장면4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함
    43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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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3#결정적 장면1
    한강 유역 장악과 신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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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2#결정적 장면2
    대가야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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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6#결정적 장면3
    황룡사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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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6#결정적 장면4
    화랑도 개편

#문왕(?-793)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수도를 천도하였다. 당과는 친선 관계를 맺었으며 신라와도 사신을 교환하는 등 주변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 ?무왕의 아들로 태어남
  • 737왕위에 오름
    #장면1 ‘대흥’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함
  • 738#장면2 당나라와의 교류를 시작함
  • 747중경 현덕부로 천도함
  • 756당나라가 안녹산을 진압하기 위해 출병을 요청함
    #장면3 상경 용천부로 천도함
  • 758#장면4 일본이 신라 정벌을 위해 협조를 요청함
    일본에 행목저주자사 양승경을 사신으로 파견함
  • 759일본에 현토주자사 고남신을 사신으로 파견함
  • 762당나라가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책봉함
  • 771일본에 일만복을 사신으로 보내어 천손(天孫)을 자칭한 외교 문서를 전달함
  • 785동경 용원부로 천도함
  • 790신라의 일길찬 백어가 사신으로 옴
  • 793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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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7#결정적 장면1
    독자적 연호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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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8#결정적 장면2
    당과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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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6#결정적 장면3
    수도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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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8#결정적 장면4
    신라 정토 계획

#무열왕(603-661)

외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한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 603김용춘(또는 김용수)의 아들로 태어남
  • 642신라 대야성이 백제에게 함락됨
    김춘추 사위인 김품석 부처의 죽음
    #장면1 외교 활동을 전개함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갔으나 실패함
  • 643당에 군사 동맹을 제의했으나 당 태종이 거절함
  • 647#장면2 상대등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여 실권을 장악함
    일본에 건너가 동맹 의사를 타진하지만 실패함
  • 648당나라로부터 백제 공격을 위한 군사 지원을 약속받음
  • 649당의 의관 제도를 채택함
  • 651#장면3 독자적 연호를 버리고 당 고종의 연호인 영휘를 사용, 정조하례제를 실시, 품주의 집사부로 개편 등 한화 정책 실시함
  • 654왕위에 오름
  • 658셋째 아들 문왕을 집사부 중시에 임명함
  • 659당에 백제 정벌을 위한 군사 파견을 요청함
  • 6603월, 당 고종이 소정방을 사령관으로 하는 13만의 대군을 파견함
    5월, 정예병 5만 명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함
    #장면4 7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함(백제 멸망)
  • 66159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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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2#결정적 장면1
    외교 활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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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7#결정적 장면2
    신라의 실권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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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1#결정적 장면3
    한화 정책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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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0#결정적 장면4
    백제 멸망

#신문왕(?-692)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국학을 세우는 등 학문을 장려하였다.
  • ?문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남
  • 681왕위에 오름
    #장면1 김흠돌의 난을 진압함
  • 6824월, 위화부령을 두어 인재 등용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함
    #장면2 6월, 국학을 설립함
  • 683일길찬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책봉함
    황금서당(고구려인)과 흑금서당(말갈인)을 설치함
    보덕국 왕 안승을 소판으로 삼고 김씨 성을 내림
  • 684보덕국 장군 대문의 반란을 진압함
  • 685#장면3 9주 5소경의 지방 통치 제도를 정비함
    사지(舍知)를 설치하여 5단계의 관직 제도(영·경·대사·사지·사)를 완성함
    봉성사와 망덕사를 준공함
  • 686벽금서당(보덕국인)과 적금서당(보덕국인)을 조직함
  • 687청금서당(백제인)을 조직하여 통일 신라의 중앙군 9서당 조직을 완성함
    직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5묘제를 확립함
  • 689#장면4 녹읍을 폐지하고 매년 직급에 따라 곡식을 차등 지급함(관료전)
  • 692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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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1#결정적 장면1
    김흠돌의 난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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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2#결정적 장면2
    국학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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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5#결정적 장면3
    지방 통치 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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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9#결정적 장면4
    녹읍 폐지와 관료전 지급

#왕건(877-943)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변경하고 수도를 천도하였다. 호족 세력을 적극적으로 통합하였고 민족을 재통일하였다.
  • 877송악군 사찬 용건(왕융)의 아들로 태어남
  • 896#장면1 아버지를 따라 궁예 휘하로 들어감
  • 909덕진포(현재 전라남도 영암 북쪽)에서 수군을 이끌고 견훤과 싸워 이김
  • 918궁예를 축출하고 즉위함
    #장면2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고 함
  • 919법왕사, 왕륜사 등 10개 사찰을 창건함
  • 925발해 장군 신덕 등 500여 명이 고려에 귀순함
    조물성 전투에서 후백제에 밀리자 화친을 제의함
  • 927후백제 용주(현재 경상북도 예천)를 빼앗음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에 패배함
  • 930고창, 병산 전투에서 후백제에 승리함
    경상도 북부 지역의 호족들이 고려에 스스로 와서 복종함
  • 934발해 태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에 귀순함
  • 936#장면3 일리천(현재 낙동강 지류)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후삼국을 통일함
  • 940#장면4 기인 제도와 사심관 제도를 도입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함
  • 942거란에서 보내 온 낙타 50필을 만부교에서 굶겨 죽이고 사신 30명을 섬으로 귀양을 보냄(만부교 사건)
  • 94367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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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6#결정적 장면1
    궁예의 부하가 된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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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8#결정적 장면2
    고려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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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6#결정적 장면3
    후백제 정복과 후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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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0#결정적 장면4
    국가 기틀 확립

#광종(925-975)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호족 세력을 억압하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또 과거제를 도입하였고, 관복을 제정하였다.
  • 925태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 949왕위에 오름
  • 950#장면1 연호 광덕을 사용함
  • 954숭선사를 창건함
  • 956#장면2 노비안검법을 실시함
  • 958#장면3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실시함
  • 960#장면4 관리의 관복 제도를 정하여 위계질서를 바로잡음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로 삼음
    대상 준홍, 좌승 왕동 등 호족을 숙청함
  • 963귀법사를 창건함
    구호와 의료를 담당하는 상설 기관인 제위보를 설치함
  • 968학덕이 높은 승려 가운데 국사(國師)와 왕사(王師)를 뽑아 국가와 왕의 고문으로 삼음(이사 제도)
  • 970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을 만들기 시작함(1006년 완성)
  • 973함경남도 장평진과 박평진, 고주에 성을 쌓고, 신도성을 수축함
  • 97551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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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0#결정적 장면1
    연호 광덕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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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6#결정적 장면2
    노비안검법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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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8#결정적 장면3
    과거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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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0#결정적 장면4
    관복 제정

#성종(960-997)

최승로 시무 28조를 수용하고 중앙과 지방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국자감을 설치하였고,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 960대종의 아들로 태어남
  • 981왕위에 오름
    팔관회를 폐지함
  • 982#장면1 5품 이상의 모든 신하에게 봉사(밀봉한 상소문)를 올리게 하고 그중에서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채택함
    #장면2 내사문하성 및 어사도성과 어사 6관을 설치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함
  • 983중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함
  • 986가난한 백성을 구호하기 위해 의창 제도를 시행함
  • 991송으로부터 대장경을 도입함
  • 992#장면3 개경에 국자감을 설치함
  • 993곡식의 물가 조절 기관인 상평창을 설치함
    #장면4 서희의 외교로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확보함
  • 995내사문하성이 중서문하성으로, 어사도성이 상서도성으로 개칭됨
  • 99738세로 승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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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2#결정적 장면1
    최승로 시무 28조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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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2#결정적 장면2
    중앙 통치 체제 확립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992#결정적 장면3
    국자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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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3#결정적 장면4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 확보

#공민왕(1330-1374)

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원의 압력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개혁은 실패하였다.
  • 1330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341원나라에 볼모로 가서 머묾
  • 1349#장면1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 대장 공주와 혼례를 올림
  • 1351왕위에 오름
  • 1352변발, 호복 등 몽골 풍속을 폐지함
  • 13565월,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함
    #장면2 쌍성총관부를 수복함
  • 1359#장면3 홍건적 1차 침입으로 서경이 함락됨
  • 1361홍건적 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어 안동으로 피란을 감
  • 1362홍건적을 격퇴하고 개경을 탈환함
  • 1363흥왕사의 난, 개경으로 환도함
  • 1365노국 대장 공주가 난산으로 죽음
  • 1366전민변정도감를 설치하고 신돈을 책임자로 명함
  • 1372귀족 자제로 구성된 자제위를 설치함
  • 1374#장면4 권문세족 최만생과 홍륜 등에게 시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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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9#결정적 장면1
    노국 대장 공주와의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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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6#결정적 장면2
    쌍성총관부 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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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9#결정적 장면3
    홍건적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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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4#결정적 장면4
    개혁 실패와 시해

#이성계(1335-1408)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고,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하여 조선 왕조를 세웠다.
  • 1335함경도 영흥에서 이자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356아버지와 함께 유인우의 쌍성총관부 공격에 내응하여 큰 공을 세움
  • 1362원나라 장수 나하추가 침입했을 때 동북면 병마사에 임명되어 적을 격퇴한 후 명성을 떨침
  • 1364동북면에 침략한 여진족을 크게 무찔러 밀직부사의 벼슬을 받음
  • 1380양광, 전라, 경상의 삼도 도순찰사로서 운봉에서 왜구를 섬멸함(황산대첩)
  • 1388#장면1 군 도통사가 되어 명을 치러 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함
    최영을 제거하고 창왕을 세웠으며, 수시중으로서 도총중외제군사가 되어 실권을 잡음
  • 1389창왕을 신돈의 후손이라 하여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킴
  • 1391#장면2 삼군도총제사로서 전제 개혁(과전법)을 단행함
  • 1392#장면3 정몽주 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름(조선 건국)
  • 1394#장면4 한양으로 천도함
  • 13981차 왕자의 난에 낙심하여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줌
  • 1400이방원(태종)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됨
  • 140874세로 승하함, 건원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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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결정적 장면1
    위화도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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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1#결정적 장면2
    과전법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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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2#결정적 장면3
    조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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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4#결정적 장면4
    한양 천도

#태종(1367-1422)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많은 치적을 거두어 왕조의 기틀을 세웠다.
  • 1367함경도 함흥에서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남
  • 138317세에 문과에 급제함
  • 1398#장면1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함
  • 1400#장면2 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함
    사병을 없애고 군사권을 장악한 후, 조선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함
  • 1402신문고를 설치함, 무과를 실시함
  • 1403주자소 설치를 설치하고, 계미자를 만듦
    하륜, 권근 등이 《동국사략》 편찬을 완수함
  • 1405#장면3 6조 직계제를 채택함
    태조의 요구에 따라 한성(한양)으로 다시 천도함
  • 1406유향소를 혁파할 것을 지시함
    전국의 사찰 소유 토지와 노비를 국고로 환수함
  • 1407경복궁 뜰에서 화약 무기의 시범을 보임
  • 1410《태조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함
  • 1413#장면4 호패법을 실시함
  • 1418충녕 대군을 세자로 책봉함
  • 142256세로 승하함, 헌릉에 묻힘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398#결정적 장면1
    1, 2차 왕자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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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0#결정적 장면2
    사병 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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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5#결정적 장면3
    6조 직계제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413#결정적 장면4
    호패법 실시

#세종(1397-1450)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였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 1397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 14186월, 세자로 책봉됨
    8월, 조선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함
  • 1419이종무가 쓰시마섬(대마도)을 정벌함
  • 1420#장면1 집현전을 설치하고 학문을 장려함
  • 1429정초가 《농사직설》을 편찬함
  • 1433《향약집성방》을 완성함, 혼천의로 천체를 관측함
  • 1434#장면2 김종서의 건의를 받아 사민 정책을 시행함, 갑인자를 완성함
    장영실 등에게 명하여 만든 자격루를 사용하고, 앙부일구를 설치함
  • 1435화약을 제조하고 화약고를 세움
  • 1441측우기를 제작해 비치함
  • 1443#장면3 훈민정음을 창제함
    최윤덕이 4군(압록강 방면)을 개척함
  • 1444전분6등법, 연분9등법으로 나눈 조세 제도를 정함
  • 1445권제, 정인지 등이 〈용비어천가〉를 지어 올림
  • 1446훈민정음을 반포함
  • 1449#장면4 김종서가 6진(두만강 방면) 설치를 마무리함(북방 개척)
  • 145054세로 승하함, 영릉(英陵)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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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0#결정적 장면1
    집현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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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4#결정적 장면2
    과학 기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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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3#결정적 장면3
    훈민정음 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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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9#결정적 장면4
    북방 개척

#세조(1417-1468)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 대군은 문종이 사망하자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였지만, 즉위 후 국방, 외교, 토지 제도 및 관제의 개편과 정비 등의 업적을 남겼다.
  • 1417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453#장면1 12살의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1452), 계유정난을 일으킴
  • 1455조선 제7대 왕으로 즉위함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시행함
  • 1456#장면2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계획한 것이 발각되자 사형에 처하고(사육신 제거), 집현전을 폐지함
  • 1457#장면3 단종(노산군)을 영월에 유배 보낸 후(1456), 사사함
    군사 조직을 진관 체제로 정비함
  • 1458《동국통감》 편찬을 명함
  • 1461《경국대전》 중 〈형전〉을 반포함
  • 1463〈동국지도〉를 완성함
  • 1464원각사 창건을 명함
  • 1466#장면4 과전법을 혁파하고 직전법을 실시함
  • 1467이시애의 난을 평정함
  • 146852세로 승하함, 광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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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3#결정적 장면1
    계유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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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6#결정적 장면2
    사육신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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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7#결정적 장면3
    진관 체제로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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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6#결정적 장면4
    직전법 실시

#중종(1488-1544)

신하들의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혁신 정치를 꾀하다가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제거하였다.
  • 1488성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506#장면1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한 후, 조선의 제11대 왕으로 추대됨
  • 1510#장면2 제포, 부산포, 염포의 삼포에서 왜인들이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킴
    비변사를 설치함
  • 1511진휼청을 설치함
  • 1512일본 사신과 세견선 및 세사미두(歲賜米豆)를 반감하는 조약을 맺음(임신조약)
  • 1514《속삼강행실도》를 간행함
  • 1517#장면3 〈여씨향약〉을 배포하여 8도에 향약을 시행함
  • 1518소격서를 폐지함
  • 1519#장면4 조광조의 건의로 현량과를 시행함(조광조의 개혁 정치)
    11월, 훈구파가 일으킨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을 축출함
  • 1522소격서를 다시 설치함
  • 1527최세진이 《훈몽자회》를 지음
  • 1530《신증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함
  • 1543풍기 군수 주세붕이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 서원을 세움
  • 154457세로 승하함, 정릉(靖陵)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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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6#결정적 장면1
    중종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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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0#결정적 장면2
    비변사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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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결정적 장면3
    향약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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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9#결정적 장면4
    조광조의 개혁 정치

#선조(1552-1608)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의 어진 정치에 힘썼으나, 당쟁으로 인한 국력의 약화로 두 번의 왜란을 겪었다.
  • 1552덕흥 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한성의 인달방 사제(私第)에서 태어남
  • 1567#장면1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조선의 제14대 왕으로 즉위함
  • 1575#장면2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며 붕당이 형성됨
  • 1589정여립 모반 사건이 일어남
  • 1592#장면3 임진왜란이 일어남
    평양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의주로 피란함
  • 1593평양성을 되찾자 서울로 돌아옴
    훈련도감을 설치함
  • 1597#장면4 명과 일본 사이에 진행되던 강화 회담이 깨지고 정유재란이 일어남
  • 1598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이 철수를 시작함
  • 1600명군이 완전히 철수함
  • 1604전쟁 중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표창함
  • 1606두 번째 왕비 인목 왕후 김씨 사이에서 영창 대군을 낳음
  • 160857세로 승하함, 목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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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7#결정적 장면1
    왕위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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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5#결정적 장면2
    붕당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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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결정적 장면3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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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7#결정적 장면4
    정유재란

#광해군(1575-1641)

명과 후금 두 나라에 대한 중립 외교 정책으로 대처하였으나, 당쟁에 휩쓸려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하였으며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 1575선조와 후궁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592#장면1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란지 평양에서 세자로 책봉됨
    세자로서 분조를 이끎
  • 1608#장면2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즉위함
    종묘와 창덕궁을 수리함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선혜청을 두고 경기도에 대동법을 시행함
  • 1609일본과 기유조약를 체결하고 국교를 회복함
  • 1614#장면3 영창 대군을 강화도 교동으로 귀양 보낸 후(1613), 죽임
  • 1615창경궁과 정릉동 행궁(덕수궁) 수리를 지시함
  • 1618인목 대비를 서궁(경운궁)에 유폐시킴
  • 1619#장면4 명의 원병 요청에 따라 강홍립을 파병하였으나(1618),
    강홍립이 후금(누르하치)에 항복함(실리 외교)
  • 1623김유 등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강화도로 유배됨
  • 1637제주도로 이배됨
  • 1641제주도 유배지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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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결정적 장면1
    분조를 이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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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8#결정적 장면2
    대동법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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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4#결정적 장면3
    영창 대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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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9#결정적 장면4
    실리 외교

#인조(1595-1649)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 1595황해도 해주에서 정원군(선조의 다섯째 아들)의 맏아들로 태어남
  • 1623#장면1 서인의 김유 등이 일으킨 반정을 통해 조선의 제16대 왕으로 즉위함
  • 1624이괄의 난으로 공주로 피란감
  • 1626수어청을 설치함
  • 1627#장면2 후금의 태종(홍타이지)이 3만 군대를 이끌고 침략해 오자(정묘호란),
    강화도로 피란하였다가 후금과 형제의 의리를 약속하는 화약을 맺음
  • 1633상평청을 설치하여 상평통보를 주조함
  • 1635#장면3 전세의 세율을 낮추는 영정법을 실시함
  • 1636청의 군신 관계 요구 거부로 인해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란감
  • 1637#장면4 청에게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치욕을 당함
  • 1645청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 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함
  • 164955세로 승하함, 장릉(長陵)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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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3#결정적 장면1
    인조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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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7#결정적 장면2
    후금과 형제지국의 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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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5#결정적 장면3
    영정법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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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7#결정적 장면4
    삼전도의 치욕

#영조(1694-1776)

탕평책을 써서 당쟁 제거에 힘썼고, 균역법의 시행, 신문고의 부활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 1694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6996세에 연잉군에 봉해짐
  • 1721경종 즉위(1720) 후, 왕세제에 책봉됨
  • 1724경종이 승하하자, 조선의 제21대 왕으로 즉위함
  • 1728이인좌의 난을 진압함
  • 1729#장면1 기유 대처분 이후 탕평책을 시행함
  • 1735영빈 이씨 사이에서 사도 세자를 낳음
  • 1746#장면2 《속대전》을 간행하여 형법 제도를 정비함
  • 1749사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함
  • 1750#장면3 균역법을 시행함
  • 175915세의 정순 왕후를 계비로 맞이함
  • 1760청계천을 준설을 시작하여 하수 처리 문제를 해결함
  • 1762#장면4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임(임오화변)
  • 1774왕세손(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함
  • 177683세로 승하함, 원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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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9#결정적 장면1
    탕평책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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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6#결정적 장면2
    제도의 개편과 문물의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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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0#결정적 장면3
    균역법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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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2#결정적 장면4
    비운의 주인공, 사도 세자

#정조(1752-1800)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실학을 크게 발전시켜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 1752사도 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남
  • 17598세에 왕세손에 책봉됨
  • 1762아버지 사도 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함
  • 1764사도 세자의 형 효장 세자의 양자로 들어감
  • 1774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함
  • 1776영조가 죽자, 조선의 22대 왕으로 즉위함
    #장면1 규장각을 설치함
  • 1781초계 문신 제도를 실시함
  • 1789장헌 세자(사도 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이장한 후 이름을 현륭원으로 고침
  • 1791#장면2 금난전권을 폐지함
  • 1793#장면3 장용위(1785)를 발전시켜 장용영을 설치함
  • 1794#장면4 수원 화성 건설을 착수함
  • 180049세로 승하함, 건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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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6#결정적 장면1
    규장각 설치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791#결정적 장면2
    금난전권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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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3#결정적 장면3
    장용영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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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4#결정적 장면4
    수원 화성 건설

#고종(1852-1919)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고종은 명성 황후와 흥선 대원군의 세력 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지만 자주와 독립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1852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 1863#장면1 12세의 어린 나이에 조선의 제26대 왕으로 즉위함
    민치록의 딸을 왕비(명성 황후)로 맞음
  • 1873친정(親政)을 시작함
  • 1876#장면2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
  • 1882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킴(임오군란)
  • 1884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킴
  • 1894동학 농민 운동, 갑오개혁, 청일 전쟁이 발발함
  • 1895명성 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함
  • 1896아관파천을 단행함
  • 1897#장면3 경운궁으로 환궁한 후, 대한 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함
  • 1904러일 전쟁이 발발함
  • 1905을사늑약이 체결됨
  • 1907#장면4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강제 퇴위당함
  • 1910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됨
  • 191968세로 승하함, 홍릉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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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3#결정적 장면1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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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결정적 장면2
    열강의 침략과 조선의 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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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결정적 장면3
    대한 제국의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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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4
    강제 퇴위 후 갑작스러운 죽음

#김옥균(1851-1894)

조선 말기의 정치가 김옥균은 급진 개화파의 지도자로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다.” - 김옥균 묘비명 -
  • 1851충청남도 공주군에서 태어남
  • 1872#장면1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함
  • 1874홍문관 교리로 임명됨
  • 1881#장면2 일본으로 건너가 근대화 실정을 시찰하고, 정치적 동향을 파악함
  • 1882수신사 박영효의 고문이 되어 2차로 일본에 건너감
  • 1883국왕의 위임장을 가지고 3차로 일본에 건너가서 국채를 모집하려 함
  • 1884#장면3 갑신정변을 일으킴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함
  • 1886일본 정부의 박해로 오가사와라섬으로 보내짐
  • 1888홋카이도 삿포로로 추방됨
  • 1894#장면4 청나라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피살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872#결정적 장면1
    청년 김옥균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881#결정적 장면2
    개화파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884#결정적 장면3
    갑신정변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894#결정적 장면4
    망명 생활과 죽음

#전봉준(1855-1895)

전봉준은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켜 맹위를 떨쳤으나,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처형되었다.
“중민이 원통해하고 한탄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 1855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남
  • 1890동학에 입교함
  • 1892전북 고부 지방의 동학 접주로 임명됨
  • 1893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진정서를 제출함
  • 1894#장면1,2,3 1월, 고부 관아를 습격함
    3월, 안핵사 이용태의 탄압에 항거하여 봉기함(1차 봉기)
    4월,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에서 크게 승리함 전주성을 점령함
    5월, 전주에서 화약을 체결함(전주 화약)
    9월, 친일 내각의 성립과 청일 전쟁의 발발로 다시 봉기함(2차 봉기)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함
  • 1895#장면4 1월, 순창에서 체포됨
    3월,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짐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894#결정적 장면1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 봉기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894#결정적 장면2
    전주성 점령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894#결정적 장면3
    2차 봉기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895#결정적 장면4
    녹두 장군 전봉준

#이상설(1870-1917)

이상설은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였으나 실패하자,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모든 것은 미완성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죽은 외로운 혼들,어찌 돌아갈 수 있으랴?”
  • 1870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남
  • 1894식년 문과에 급제함
  • 1896성균관 교수 겸 관장 등을 역임함
  • 1904일제의 황무지 개척 요구의 침략성과 부당성을 폭로함
  • 1905#장면1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 1906#장면2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함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항일 민족 교육에 힘씀
  • 1907#장면3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 특사로 파견됨
  • 1908미국에 머무르면서 대한 제국의 독립 지원 호소를 계속함
  • 1909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함
  • 1910연해주에서 의병 조직 13도 의군(十三道義軍)을 편성함
  • 1911#장면4 연해주 한인 사회를 이끄는 권업회를 조직하고, 《권업신문》을 발행함
  • 1914최초의 망명 정부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우고 정통령에 선임됨
  • 1917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연해주에서 48세로 세상을 떠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905#결정적 장면1
    을사늑약 반대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06#결정적 장면2
    서전서숙 설립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07#결정적 장면3
    헤이그 특사로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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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결정적 장면4
    권업회 조직과 《권업신문》 발행

#신돌석(1878-1908)

평민 의병장 신돌석은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며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 문득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 1878경상북도 영해군(현재 영덕군)에서 태어남(본명 태호)
  • 1896#장면1 명성 황후 시해 사건 후, 19세의 젊은 나이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영해에서 봉기하여 영해의진 중군장으로 활약함
  • 1906#장면2 을사늑약 체결 후, 300여 명의 의병을 모으고 영릉 의병장이 됨
    4월, 울진 장흥관에서 일본군 배 9척을 격파함
    6월, 원주에서 일본군을 습격함
  • 1907#장면3 11월, 전국 의병 부대가 양주로 집결해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자, 영남 지방을 담당하는 교남 창의 대장으로 추대됨
  • 1908#장면4 1월, 평해 독곡에서 일본군을 격파함
    4월, 울진 도곡에서 적의 무기를 다수 빼앗음
    12월, 의병을 해산하고 영해에 은신해 있다가 암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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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결정적 장면1
    19세에 영해의진 중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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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결정적 장면2
    영릉 의병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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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3
    13도 창의군 영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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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결정적 장면4
    안타까운 죽음

#안중근(1879-1910)

안중근은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 운동에 참가하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 1879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남
  • 1897천주교에 입교하여 ‘토마스(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음
  • 1905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구국 운동을 전개함
  • 1906남포에 돈의 학교를 설립하고 계몽 교육에 힘씀
    평양에 삼합의(광산 회사)를 설립하여 산업 진흥 운동에도 매진함
  • 19072월,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나자 관서 지부를 조직하여 주도적으로 이끎
    #장면1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 부대를 조직함
  • 19086월, 대한의군 참모 중장 자격으로 의병 부대를 이끌고 함경북도 경흥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여 전멸시킴 7월, 홍범도 의병 부대와 함께 신아산 일대의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함
  • 1909#장면2 3월,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 결사 조직 동의단지회를 결성함
    #장면3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
  • 1910#장면4 뤼순 감옥에서 자서전(안응칠 역사)과 《동양 평화론》의 저술에 힘씀
    3월 26일, 32세로 감옥에서 순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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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1
    국외로 망명 후 의병장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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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결정적 장면2
    동의단지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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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결정적 장면3
    이토 히로부미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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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결정적 장면4
    감옥에서 《동양 평화론》 저술

#베델(1872-1909)

영국의 언론인 베델은 우리나라에 와서 《대한매일신보》 발행하여 일본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였다.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 1872영국의 항구 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남
  • 1888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업에 종사함
  • 1900일본 고베에서 마리모드 게일과 결혼식을 함
  • 1904#장면1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런던 데일리 뉴스의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옴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함
  • 1905#장면2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영문 번역 게재하여 일제 침략을 격렬하게 규탄하고 조선의 실상을 서방 세계에 알림
  • 1907#장면3,4 고종의 밀서 사진을 게재하여 일본의 침략 정책을 국내외에 폭로함
    2월, 일본에 의한 경천사지 10층 석탑 불법 반출 사건에 관한 논설을 기고함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이 《대한매일신보》의 지원 속에 전국으로 확대됨
    10월, 일제가 영국에 압력을 가하자 치안 방해 혐의로 주한 영국 총영사관에 공소되어 6개월 근신 형을 선고받음
  • 19086월, 3주일간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영국 군함에 호송되어 상하이로 가서 복역함
    7월, 서울에 돌아온 후 계속해서 일본 언론의 허위 등을 고발함
  • 190938세로 세상을 떠남,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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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결정적 장면1
    《대한매일신보》의 영국인 사장 베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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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결정적 장면2
    일본의 침략 전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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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3
    일본의 경천사지 10층 석탑 불법 반출 사실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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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4
    국채 보상 운동 지원

#손병희(1861-1922)

항일 독립운동가 손병희는 천도교인으로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겨레의 가슴에 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소.”
  • 1861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남
  • 1882동학에 입도함
    동학 교주 최시형과 함께 서울 광화문 앞에서 복합 상소를 하며 척왜양(斥倭洋)을 부르짖음
  • 1894#장면1 북접통령이 되어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동학 농민 운동을 주도함
  • 1897#장면2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됨
  • 1901동학에 대한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함
  • 1904망명 중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의정 대신과 법무 대신에 글을 보내 정치 개혁을 주장함
  • 1905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함
  • 1906일본에서 귀국하여 서울에 천도교 중앙총부를 설치함
  • 1910#장면3 출판사 보성사를 설립하는 등 민족혼을 일깨우는 교육에 힘씀
  • 1919#장면4 민족 대표 33인으로 3·1 운동을 주도함
  • 1920징역 3년 형을 언도받음
  • 1921서대문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출감함
  • 192262세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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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결정적 장면1
    전봉준과 함께 동학 농민 운동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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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결정적 장면2
    동학의 제3대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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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결정적 장면3
    민족 계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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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결정적 장면4
    "민족 대표 33인으로 3·1 운동 주도"

#신채호(1880-1936)

민족 사학자 신채호는 독립운동과 국사 연구에 힘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 1880충청남도 대덕군에서 출생함
  • 1901독립협회 운동에 참여하여 청원군 문동 학원에서 계몽 운동을 전개함
  • 1905#장면1 장지연의 초청으로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이 됨
  • 1907신민회 조직에 참여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국채 보상 운동을 적극 지원함
  • 1911연해주로 가서 광복회를 조직하고, 《권업신문》을 창간하자 주필로 활약함
  • 1914#장면2 서간도 동창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며 조선사를 집필함
  • 1918베이징에서 국사 연구를 하면서 《북경일보》 등에 논설을 기고함
  • 1919#장면3 4월, 상하이의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 의정원 의원이 됨
    7월, 전원 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으나 이승만의 노선에 반대하여 사임함
    상하이에서 《신대한》을 창간하고 주필이 되어 적극적인 독립 노선을 주창함
  • 1922#장면4 상하이에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함
  • 1925민족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함
  • 1927이상재 등과 함께 신간회를 발기함
  • 1928타이완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됨
  • 1930다롄 법정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서 복역함
  • 1931《조선일보》에 〈조선 상고사〉를 연재함
  • 1936복역 중 57세에 순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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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결정적 장면1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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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결정적 장면2
    역사 연구를 통해 민족의식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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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결정적 장면3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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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결정적 장면4
    〈조선 혁명 선언〉 작성

#안창호(1878-1938)

안창호는 3·1 운동 후 상하이 임시 정부의 내무 총장이 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 1878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남
  • 1897독립 협회에 가입함
  • 1898#장면1 이상재 등과 만민 공동회를 개최함
  • 1899강서군에 점진 학교를 설립하고, 황무지 개간 사업을 실시함
  • 1903샌프란시스코에서 상항 한인 친목회를 조직함
  • 1905대한인 공립 협회를 설립하고, 《공립신보》를 발행함
  • 1907#장면2 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 결사 단체 신민회를 조직함
    평양에 대성 학교를 설립함
  • 1913#장면3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하고, 민족 부흥 운동에 힘씀
  • 1919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 정부 내무 총장 및 국무총리 서리직을 맡음
  • 1921#장면4 임시 정부 내각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여 사임함
  • 1923상하이에서 국민 대표회가 개최되자, 부의장에 취임함
  • 1930상하이에서 한국 독립당을 결성함
  • 1932훙커우 공원의 윤봉길 의사 의거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후 징역 4년 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와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함
  • 1937가출옥 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함
  • 193861세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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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결정적 장면1
    독립 협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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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결정적 장면2
    신민회 조직과 애국 계몽 운동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13#결정적 장면3
    재미 동포 사회를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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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결정적 장면4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헌신

#김마리아(1892-1944)

애국 부인회 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원산의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한다."
  • 1892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남
  • 1906연동 여학교(정신 여학교의 전신)에 입학함
  • 1910#장면1 수피아 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민족 교육을 실천함
  • 1916일본 동경 여자 학원 대학 예비과에 입학함
  • 1917동경 여자 유학생 친목회 회장에 선임됨
  • 1919#장면2 2·8 독립 선언에 참여함, 독립 선언서를 몸에 숨기고 귀국함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됨
    #장면3 애국 부인회를 발족하고 회장에 선출됨
  • 1921애국 부인회 사건으로 재판 중 탈출하여 중국으로 망명함
  • 1922#장면4 여성 최초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임시 의정원 황해도 대의원에 선출됨
  • 1923미국으로 망명함
  • 1928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음
  • 1932기독교 장로교 여전도회에서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함
  • 194453세로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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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결정적 장면1
    민족 교육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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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결정적 장면2
    2·8 독립 선언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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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결정적 장면3
    애국 부인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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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결정적 장면4
    여성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정원의 대의원 선출

#김구(1876-1949)

중국 상하이의 임시 정부 조직에 참여하였고, 신탁 통치와 남한 단독 총선을 반대하며 남북 협상을 제창하였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 1876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남
  • 1895남만주 의병 부대에서 활동함
  • 1896안악 치하포에서 왜병 중위 쓰시다를 처단함
  • 1911안명근 사건으로 17년 형을 선고받음(이후 감형되어 1914년에 석방됨)
  • 1919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으로 추대됨
  • 1927#장면1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령에 취임함
  • 1931#장면2 한인 애국단을 조직함
  • 19321월 8일 이봉창 의거와 4월 29일 윤봉길 의거를 주도함
  • 1940임시 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에 취임함
    #장면3 충칭에서 한국 광복군을 조직함
  • 1941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이름으로 대일 선전 포고함
  • 1945광복 이후 11월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함께 제1진으로 환국함
  • 1948#장면4 남한의 단독 선거를 막기 위해 남북 협상을 추진함
  • 1949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74세로 세상을 떠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927#결정적 장면1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령 취임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31#결정적 장면2
    한인 애국단 결성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40#결정적 장면3
    한국 광복군 창설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48#결정적 장면4
    남북 협상 추진

#홍범도(1868-1943)

의병을 일으켜 항일전에서 여러 차례 적군을 격파하였고, 만주로 건너가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였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분투하여, 우리 독립을 최후까지 외치다가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
  • 1868평양에서 태어남
  • 1895#장면1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이에 반발하여 항일 의병 활동을 시작함
  • 1907산포대를 조직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함
  • 1908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함
  • 1910의병을 모집하고 무기를 구입하여 국내 진격 작전을 펼침
    13도 의군 조직에 참여함
  • 1911#장면2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 단체 권업회의 부회장에 취임함
  • 1919간도로 이동하여 대한 독립군을 편성하고 총사령관에 취임함
  • 1920#장면3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함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함
  • 1921러시아 자유시의 고려 혁명 군관 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함
  • 1937#장면4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함
  • 194376세로 세상을 떠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895#결정적 장면1
    항일 의병 활동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11#결정적 장면2
    권업회 부회장 취임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20#결정적 장면3
    봉오동 전투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37#결정적 장면4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김원봉(1898-1958)

의열단의 단장으로 항일 무장 투쟁에 앞장섰으며, 조선 의용대, 한국 광복군을 이끌었다.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오.”
  • 1898경상북도 밀양에서 태어남
  • 1919#장면1 윤세주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함, 의열단의 단장이 됨
  • 1926황푸 군관 학교 훈련생으로 입소함
  • 1932#장면2 난징에서 조선 혁명 군사 정치 간부 학교를 설립함
  • 1935한국 민족 혁명당을 조직함
  • 1937우한에서 조선 민족 혁명당을 중심으로 한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함
  • 1938#장면3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인 조선 의용대 대장에 취임함
  • 1944임시 정부의 군무부장에 취임함
    #장면4 한국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함
  • 1946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이 본격화되자 월북함
  • 1948남북 제정당 사회 단체 연석 회의(남북 협상)에 참가함
  • 1958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함
    반대 세력의 숙청으로 61세에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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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결정적 장면1
    의열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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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결정적 장면2
    조선 혁명 군사 정치 간부 학교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38#결정적 장면3
    조선 의용대 대장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44#결정적 장면4
    한국 광복군

#이상재(1850-1927)

서재필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으며,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청년이 나라의 보배요, 천하의 보배이다.”
  • 1850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남
  • 1881#장면1 일본 조사 시찰단에 참여함
  • 1884우정국 주사로 근무하다가 갑신정변 이후 낙향함
  • 1887주미 공사관의 2등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미국으로 건너감
  • 1894사범 학교, 외국어 학교 등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함
  • 1896#장면2 독립 협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만민 공동회를 개최함
  • 1911황성 기독교 청년회 종교 부장에 취임함
  • 1919#장면3 기독교 계열의 3·1 운동을 지도한 혐의로 일제에 체포됨
  • 1920조선 교육 협회를 창립함
  • 1922민립 대학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여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주도함
  • 1927#장면4 신간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됨
    노환으로 78세에 세상을 떠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881#결정적 장면1
    조사 시찰단 참여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896#결정적 장면2
    독립 협회 부회장 선출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19#결정적 장면3
    3·1 운동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27#결정적 장면4
    신간회 초대 회장 취임

#여운형(1886-1947)

대한민국 임시 정부 조직에 참가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여 좌우익의 합작을 추진하였다.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 1886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남
  • 1914중국 난징 금릉 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장면1 항일 비밀 단체 동제사에 가입함
  • 1918상하이 고려민 친목회를 설립함
  • 1919신한 청년당을 조직함
    상하이 임시 정부 외무부 차장에 취임함
    11월, 도쿄에서 일본 고위 관리와의 회담에서 즉시 독립을 주창함
    12월, 상하이로 귀환함
  • 1929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됨,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음
  • 1936#장면2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가 정간을 당함
  • 1942일본 패망 관련 발언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됨
  • 1943조선 민족 해방 연맹을 조직함
  • 1944#장면3 건국 동맹을 조직함
  • 1945#장면4 8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함
    11월, 조선 인민당을 결성함
  • 1946근로 인민당 위원장에 취임함
  • 1947한지근이 쏜 총에 맞아 62세로 세상을 떠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914#결정적 장면1
    동제사 가입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36#결정적 장면2
    일장기 말소 사건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44#결정적 장면3
    건국 동맹 조직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45#결정적 장면4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

#이승만(1875-1965)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상하이 임시 정부 대통령을 지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장기 집권하였다.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민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으며, 또한 한때는 자유를 알았으나 당분간 그 자유를 상실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운명과도 분리될 수 없다.”
  • 1875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남
  • 1895배재 학당에 입학함
  • 1896학생 중심의 계몽 운동 단체인 협성회에 참여함
  • 1898독립 협회가 주최한 만민 공동회에서 연설함
  • 1899독립 협회 사건으로 투옥됨
  • 1904미국으로 출국함
  • 1910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함
  • 1919구미 위원부를 개설함
    #장면1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임시 대통령에 취임함
  • 1945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함
  • 1946정읍 선언으로 남한 단독 정부의 수립을 촉구함
  • 1948#장면2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함
  • 19603·15 부정 선거
    #장면3 4·19 혁명
    #장면4 대통령직에서 물러남
  • 1965하와이에서 91세로 서거함
  • 결정적 장면1 확대보기
    1919#결정적 장면1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임시 대통령 취임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48#결정적 장면2
    초대 대통령 취임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60#결정적 장면3
    4·19 혁명
  • 결정적 장면4 확대보기
    1965#결정적 장면4
    대통령직에서 물러남

#김대중(1924-2009)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유신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위해 힘썼다. 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내가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지 않는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
  • 1924전라남도 하의면에서 태어남
  • 1952#장면1 흥국해운을 설립함
  • 1954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함
  • 1963제6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됨
  • 1971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함
  • 1972일본 도쿄에서 유신 반대 첫 성명을 발표함(1차 망명)
  • 1973#장면2 중앙정보부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됨(김대중 납치 사건)
  • 19763·1 민주 구국 선언 사건으로 구속됨(2년 뒤 가석방 되어 가택 연금됨)
  • 1978#장면3 12·12 사태, 5·18 민주화 운동
  • 1981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미국으로 망명함(2차 망명)
  • 1987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함
  • 1998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함
  • 2000#장면4 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함
    노벨 평화상을 수상함
  • 200986세로 서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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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결정적 장면1
    국회 의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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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결정적 장면2
    김대중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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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결정적 장면3
    12·12 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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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결정적 장면4
    남북 정상 회담 개최

#전태일(1948-1970)

봉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1948대구에서 태어남
  • 1954서울로 이주해 남대문 국민학교를 다님
  • 19633월, 대구로 다시 내려가 청옥 고등 공민학교에 입학함
    12월, 자퇴함
  • 1964가출해 서울로 상경함
  • 1965#장면1 서울 평화 시장 삼일사 견습생으로 취직함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과중한 노동을 보며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됨
  • 1966여공을 도왔다는 이유로 삼일사에서 해고됨
  • 1967재단사가 됨
  • 1968우연히 근로 기준법을 알게 된 뒤 해당 내용을 공부함
  • 1969#장면2 열악한 노동 조건과 근로 기준법 위반에 대해 노동청에 진정을 함
    평화 시장 재단사 모임 바보회를 결성함
  • 1970#장면3 <평화 시장 피복 제품상 종업원 근로 조건 개선 진정서&rt;를 노동청에 제출함
    #장면4 11월, 평화 시장 네거리에서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함(전태일 분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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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결정적 장면1
    삼일사 견습생 취직
  • 결정적 장면2 확대보기
    1969#결정적 장면2
    바보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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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결정적 장면3
    노동청에 진정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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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결정적 장면4
    전태일 분신 사건

#박종철(1965-1987)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부산 출신의 학생 운동가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
  • 1965부산에서 태어남
  • 1979#장면1 12·12 사태
  • 1984#장면2 3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함
    대학 문화 연구회에 가입하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함
  • 19855월, 사당동 강제 철거 반대 시위로 5일 구류됨
    6월, 구로 동맹 파업 지원 가리봉동 시위로 경찰에 연행되어 3일 구류됨
    8월, 대림동 공단에서 공장 생활을 체험하는 활동을 하며 노동 운동에 뛰어듦
  • 19863월,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출됨
    4월, 청계 피복 노조 합법성 쟁취 대회에 참가한 뒤 구속됨
    7월, 징역 10월에 집행 유예 2년으로 출소함
  • 19871월, 수배 중인 한 선배를 도와줌
    #장면3 1월, 치안 본부 대공 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남(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 1997#장면4 6월, 서울대 교정에 추모비를 건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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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결정적 장면1
    12·12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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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결정적 장면2
    학생 운동 참여 시작
  • 결정적 장면3 확대보기
    1987#결정적 장면3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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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결정적 장면4
    추모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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